타지생활/생활하기
2024.03.17 - [나으삶] - 한국 검진 결과 가지고 독일에서 전신마취 수술하기 -1 두둥!! 수술날이 되었다. 수술 전날부터 떨렸는데 왜냐하면 아침 7시까지 병원에 도착해야하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 병원까진 1시간 거리여서 여섯시 출발해야하고 그럼 다섯시엔 일어나야하기 때문이다. 무튼 당일날 어찌저찌 잘 일어나서 병원에 도착하였다. 이미 입원 수속을 해놓은 터라 별도의 수속절차 없이 간호사분이 병실 침대로 안내하고 수술을 위한 수술복을 주었다. 압박 스타킹과 거즈쪼가리 팬티 그리고 뒤가 뚫려있는 원피스였다. 독일 병원엔 입원복이 없기 때문에 수술하는 사람만 수술복을 입고 나머진 편한 복장으로 있는다고 한다. 나는 다행히(?) 수술을 하기 때문에 수술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4인실이였고 나 말..
독일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굉장히 잘 되어있다. 회사를 다녀서 국가 건강보험에 가입하면 정말 병원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그만큼 보험료를 많이 내긴 하지만, 암 수술 항암까지 모두 무료로 제공된다고 하니 많이 내는 보험료가 아깝지 않다. 하지만 독일에서 의료예방과 병원 예약시스템에 대한 부분은 굉장히 불만족스럽다. 독일은 의료 시스템은 일단 증상이 생기면 1차 병원인 가정의학과를 방문해서 가정의학과 의사로 하여금 2차병원에 대한 소견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나면 2차 병원 갑상선의학과, 신경외과 등등에 예약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2차 병원의 예약이 대부분 엄청 길다는 것이다. 보통 짧으면 1달에서 길면 3달까지 대기 순번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같은 건강검진이 잘 되어있지 않다. 의료보험이..
마르쎌과 한국에서 전통혼례를 하고 독일로 왔다. 한국에서 혼인신고는 아직 하지않았는데 이유는 독일에서 시청결혼식을 하고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10월 한국에 갔을때 한국에서 떼야하는 증명서를 떼고 아포스티유를 받아서 왔다. 독일의 시청결혼식을 위해서는 한국에서 떼와야하 하는 증명서는 총 3개이다. 1. 기본증명서 2. 혼인관계증명서 3. 가족관계증명서 나는 직인을 위해 무인발급기가 아니라 직접 창구에 가서 다 떼왔다. 그리고 아포스티유를 위해 광화문에 위치한 재외동포청에가서 아포스티유도 다 받아왔다. 요즘 한국은 가족관계증명서 아포스티유를 법원 홈페이지에서 인터넷으로 받을 수 있지만, 독일은 뭐든지 원본, 사람이 직접 사인하고 스티커붙이고 뭐 이런걸 좋아해서 웬지 찝찝한 마음에 인터넷으로 받지 않고..
사실 올해의 목표는 독일에서 운전면허를 다시 "새로" 따는 것이였다. 나는 한국 면허가 있지만 운전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 내가 바로 이명박 정권의 최대 피해자이다. 명박이가 다스이즈 누구꺼 하면서 운전면허 시험을 매우 간소화시켜서 정말 조금 과장해서 직진으로 운전만 하면 딸수 있게 했던 시대가 있었다. 나는 그때 첫 설계 사무실이였고 소장놈이 하도 따라고 지랄해서 따기 싫었는데 운전면허를 따게된다. 필기는 공부 거의 안하고 시험전날인가 앱으로 공부해서 붙고 장내 실기는 T자 S자 없고 걍 직진만 했던거같은데 너무 쉬워서 기억도 안난다. 장외 실기는 내 앞사람이 나랑 똑같은 코스여서 그냥 붙었다. 그리고 붙고나서 운전을 하는데 직진밖에 할줄 몰라서 홍대에서 삼성 서비스센터 걸어서 30분갈꺼 소장놈이 지..
2019년 4월에 독일에 와서 2020년 2월부터 지금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였다. 어학도 한 6개월 한 나를 왜 뽑아 줬는지 조금 궁금했지만, 처음에는 고마워하면서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솔직히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나 혼자 그리고 소장이랑 이렇게 둘이서 한다. 두 명이 할 건 못되지만 어쨌든 1인분의 역할을 이 회사에서 하고 있구나 하고 잘 다녔다. 하지만 너무 적은 휴가 일수와 급여를 굉장히 적게 올려줌 등으로 이직 결심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급여가 너무 적게 올라서 동기부여가 사라졌다. 올해 10월 즈음 나는.소장에게 정식으로 내 급여를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소장은 나를 20년차 경력의 직원과 비교하면서 너는 이렇게 일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니 나도 여기서 20년차 있었으면 할 수 ..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다. 내가 결혼을 하다니. 결혼을 하였다. 마르쎌과 어언 1년쯤 만났을 때 나는 한국을 아직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독일에서 살려면 울타리나 뭐 좀 결속력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르쎌한테 먼저 제안했다. " 혹시 너 결혼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니? 난 우리가 2년쯤 사귀고 나면 결혼하고 싶은데 결혼 생각이 없으면 말해줘, 다른 이를 찾아봐야 하니까 ^^" 마르쎌은 급 당황을 하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하. 까였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마르쎌이 오케이 했다. 내가 먼저 프러포즈를 한 것이었다. 작년에 올해쯤 한국에서 전통혼례를 하자는 계획을 짜고 가족과 상의를 했다. 그리고 올해 5월에 결혼식 전에 한국에 들어가서 가족들에게 마르쎌을 소개해주..
어린시절 까마득히 내 기억의 처음을 더듬거릴때부터 나와 알러지는 항상 친구였던거같다. 종합병원에서 내 등에 볼펜으로 낙서를 하고 물방울을 떨어트리고 그 주위가 몹시 가려웠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알러지 테스트였겠지. 추석 설날에 할아버지 댁을 가면 아침부터 눈을 비비기 일수였고 재채기 콧물 모든 것이 나와 함께였다. 항상 코가 막혀서 입을 열고 잤는데, 다행이게도 입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입을 열고자면 그 입의 골격이 변형되어 튀어나오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거같다. 겉모습이 문제는 아닌게 코골이, 깊이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등등 많은 부작용이 있다. 알러지 결막염, 비염, 천식까지 있었는데 결막염은 고등학교때, 천식은 어릴때 사라졌고 이제 비염만이 남았다. 사실 천식은 코로나 이후 다시 얻게되었다 룰..
코로나에 걸리고 음성이 나온지 이제 3주가 지났다. 코로나는 걸리고 나서 1주일간도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리고 음성이 나오고 지금까지도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게 건강하지 못한것 같다. 후유증에 대해 나열해볼까 한다. 1. 집중력 상실 코로나에 걸리고 한 일주일동안은 집중을 제대로 할수가 없었다. 집중을 하면 웬지 머리가 아파왔다. 일을 오래 할수도 없었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별로 안좋아졌다. 하지만 이것은 한 이주정도 있고 사라졌다. 2. 후각 상실 그리고 후각이 거의 사라졌다. 다행히도 완벽하게 없어진건 아니고 코를 들이박고 냄새를 맡으면 냄새가 맡아진다. 이 증상은 조금 더럽게도 내가 화장실에 갔을때 알게되었는데 길게 머물러있는데도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것이였다! 나는 내 배설물이 드디어 아름다..
이명박 정권때 한창 신종플루가 유행했었다. 방역을 얼마나 개떡같이 했는지 진짜 개나소나 다 걸렸었는데 다행히도 나는 그 당시 신종플루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메르스도 지나가고 에볼라도 지나가고 코로나가 왔다. 여러 과학자들에 의하면 판데미는 약 5년 주기마다 온다고 하는데 바야흐로 그 판데미 시대가 열린것이다. 그리고 이 판데미는 기후변화로 인해 주기는 앞으로 더 빨라질것이라고 하지. 지난 2년간, 독일에와서 어학을 하고 취업을 해서 좀 살만해졌나 했더니 코로나가 터졌다. 아직도 2년전의 그 기사를 잊지 못한다. 뉴스에서는 중국에서 괴질병이 발생했다고 연신 떠들어댔고, 난 취업을 한지 얼마 되지않아 바들바들 떨었는데 유럽에서는 내일 아니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상관안하고 있었던 그당시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