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생활
2024.03.17 - [나으삶] - 한국 검진 결과 가지고 독일에서 전신마취 수술하기 -1 두둥!! 수술날이 되었다. 수술 전날부터 떨렸는데 왜냐하면 아침 7시까지 병원에 도착해야하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 병원까진 1시간 거리여서 여섯시 출발해야하고 그럼 다섯시엔 일어나야하기 때문이다. 무튼 당일날 어찌저찌 잘 일어나서 병원에 도착하였다. 이미 입원 수속을 해놓은 터라 별도의 수속절차 없이 간호사분이 병실 침대로 안내하고 수술을 위한 수술복을 주었다. 압박 스타킹과 거즈쪼가리 팬티 그리고 뒤가 뚫려있는 원피스였다. 독일 병원엔 입원복이 없기 때문에 수술하는 사람만 수술복을 입고 나머진 편한 복장으로 있는다고 한다. 나는 다행히(?) 수술을 하기 때문에 수술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4인실이였고 나 말..
마르쎌과 한국에서 전통혼례를 하고 독일로 왔다. 한국에서 혼인신고는 아직 하지않았는데 이유는 독일에서 시청결혼식을 하고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10월 한국에 갔을때 한국에서 떼야하는 증명서를 떼고 아포스티유를 받아서 왔다. 독일의 시청결혼식을 위해서는 한국에서 떼와야하 하는 증명서는 총 3개이다. 1. 기본증명서 2. 혼인관계증명서 3. 가족관계증명서 나는 직인을 위해 무인발급기가 아니라 직접 창구에 가서 다 떼왔다. 그리고 아포스티유를 위해 광화문에 위치한 재외동포청에가서 아포스티유도 다 받아왔다. 요즘 한국은 가족관계증명서 아포스티유를 법원 홈페이지에서 인터넷으로 받을 수 있지만, 독일은 뭐든지 원본, 사람이 직접 사인하고 스티커붙이고 뭐 이런걸 좋아해서 웬지 찝찝한 마음에 인터넷으로 받지 않고..
사실 올해의 목표는 독일에서 운전면허를 다시 "새로" 따는 것이였다. 나는 한국 면허가 있지만 운전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 내가 바로 이명박 정권의 최대 피해자이다. 명박이가 다스이즈 누구꺼 하면서 운전면허 시험을 매우 간소화시켜서 정말 조금 과장해서 직진으로 운전만 하면 딸수 있게 했던 시대가 있었다. 나는 그때 첫 설계 사무실이였고 소장놈이 하도 따라고 지랄해서 따기 싫었는데 운전면허를 따게된다. 필기는 공부 거의 안하고 시험전날인가 앱으로 공부해서 붙고 장내 실기는 T자 S자 없고 걍 직진만 했던거같은데 너무 쉬워서 기억도 안난다. 장외 실기는 내 앞사람이 나랑 똑같은 코스여서 그냥 붙었다. 그리고 붙고나서 운전을 하는데 직진밖에 할줄 몰라서 홍대에서 삼성 서비스센터 걸어서 30분갈꺼 소장놈이 지..
3년간 회사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한 것 중 하나가 이메일 쓰기이다. 회사와 협의할 때도 이메일을 주로 썼으며 나는 운이 좋게도 예전 룸메도 독일인, 지금 남편도 독일인이어서 만약 내일 무슨 일이 있고 거기에 대해 이메일을 써야 한다 하면 집에 와서 숙제처럼 한번 써본 뒤에 독일인들에게 첨삭받았다. 이런 독일어는 학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몇 개의 상황을 예시로 블로그에다가 써볼까 한다. 그래서 첫 번째 주제로는 첨부파일을 보낼 때이다. 이메일 혹은 편지 쓰기의 기본 중의 기본인 Sehr geehrte Damen und Herren, 이것도 사실 진짜 누구한테 보내는지 모를 때나 쓰고 보통은 Guten Tag Frau/Herr~, 혹은 아침에 보내는 경우 Guten Morgen Frau/He..
2019년 4월에 독일에 와서 2020년 2월부터 지금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였다. 어학도 한 6개월 한 나를 왜 뽑아 줬는지 조금 궁금했지만, 처음에는 고마워하면서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솔직히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나 혼자 그리고 소장이랑 이렇게 둘이서 한다. 두 명이 할 건 못되지만 어쨌든 1인분의 역할을 이 회사에서 하고 있구나 하고 잘 다녔다. 하지만 너무 적은 휴가 일수와 급여를 굉장히 적게 올려줌 등으로 이직 결심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급여가 너무 적게 올라서 동기부여가 사라졌다. 올해 10월 즈음 나는.소장에게 정식으로 내 급여를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소장은 나를 20년차 경력의 직원과 비교하면서 너는 이렇게 일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니 나도 여기서 20년차 있었으면 할 수 ..
한국에선 항상 컴퓨터가 있었다. 노트북이 아닌 컴퓨터가. 학교 작업실에 컴퓨터를 놓고 작업하는데 편했고, 졸업 설계 때는 학교 내 자리에 컴퓨터를 옮겨놓고 작업을 했다. 처음엔 조립을 하지 않고 아빠가 사줬던거 같은데 그 사준 컴퓨터가 메인보드에 뻑이 가서 어쩔 수 없이 교체해야만 했다. 처음엔 뻑이 어디서 간지 몰라서 하나씩 바꾸기 시작했다. 그래픽카드, 씨피유 그러다가 메인보드에서 뻑이 간걸 알고 다 교체를 진행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내손으로 직접 공부하며 부품 사서 조립한 컴퓨터를 일 년 만에 아빠한테 다시 팔았다. 독일로 오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간편한 노트북으로 바꿔서 오려고 아빠에게 팔고 그 돈으로 노트북을 사고 한 한 달 전까지 자주 사용했던 것 같다. 단점이라면 남편이 게임하는데 나도 너..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다. 내가 결혼을 하다니. 결혼을 하였다. 마르쎌과 어언 1년쯤 만났을 때 나는 한국을 아직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독일에서 살려면 울타리나 뭐 좀 결속력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르쎌한테 먼저 제안했다. " 혹시 너 결혼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니? 난 우리가 2년쯤 사귀고 나면 결혼하고 싶은데 결혼 생각이 없으면 말해줘, 다른 이를 찾아봐야 하니까 ^^" 마르쎌은 급 당황을 하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하. 까였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마르쎌이 오케이 했다. 내가 먼저 프러포즈를 한 것이었다. 작년에 올해쯤 한국에서 전통혼례를 하자는 계획을 짜고 가족과 상의를 했다. 그리고 올해 5월에 결혼식 전에 한국에 들어가서 가족들에게 마르쎌을 소개해주..
우리나라엔 또라이 질량 법칙이라는 단어가 있다. 한 직장에 무조건 또라이 한 명은 있다는 뜻이고 또라이가 없다면 본인이 또라이인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이건 전세계 공용인 것 같다. 우리 사무소는 좀 심각한데 그것은 바로 마리온 때문이다. 그녀는 정말 미쳤다. 생김새에 대해선 구지 쓰지 않겠다. 독일에 와서 느낀건 이 사람들은 남이 무엇을 하건 개인주의가 심해서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마리온은 예외다. 예외. 그녀는 내가 생각하기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 편집증이 있고 노이로제가 있으며 열등감도 있는 것 같다. 나는 회사엔 일만 하자는 주의여서 누구와 항상 다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 이 독일 놈들에겐 없는 일종의 동양 문화적 특유의 배려심까지 있으니 내가 얼마나 회사에서 친절했을까. ..
2주 전에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에 다녀왔다. 도큐멘타는 독일에서 나치 시절 때 예술이 탄압을 받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에게 현대미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행사로 열리기 시작했다. 5년마다 100일간 열린다고 한다. 사실 암것도 모른 채 오 5년마다 열리는 예술 축제라고 해서 다녀왔는데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찾아보고 가면 좋을 듯하다. 이번 전시에는 인도네시아 예술가인 타링 파디가 작업했던 민중의 정의라는 거대한 그림이 반 유대주의적이라는 것에 휩싸여 철거되기도 했다. 누구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철거되었기에 나는 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무튼 이번 도큐멘타의 주제는 인도네시아의 전통적인 공용 쌀 저장창고 '룸붕'이다. 공동체의 관한 주제인 것 같다. 전 세계의 예술이 모여들다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