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글쓰기 수업을 등록해보았다.
1주차 첨삭을 받고 완성한 글을 남겨본다.
수업의 질도 좋고해서 취미로 글쓰고 싶은 사람들에겐 추천! 다음달 등록할 마음 있음!
소글 인스타그램 @sogeu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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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걸로 자아 실현을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지만 일을 통해 자아를 알아간다는 점에서는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건축학과를 졸업한지도 어언 10년이 되었다. 10년동안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건축이라는 분야의 특성때문일까 아님 원래 그런것일까, 아직도 나는 모르는게 많고 배워야할게 많다. 건축학과를 나오고 첫 직장에 다닐때만 해도 나는 어떠한 환상을 가졌다.
예술을 할 것 같고, 대단하고 멋진 건축물을 설계할 거 같다는 막연한 환상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공무원과 치대며 법규를 알아야하고 예산때문에 좌절되는 일들과 건축주와 취향의 문제로 내 취향이 좌절되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연속되는 좌절과 부딫침 속에서 아, 나는 좋은 디자이너는 못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 차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들을 남들에게 설득을 잘 못시키겠으며 왜 돈을 내는 건축주님의 취향보단 내 취향이 우선시되어야하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또 나는 월급이 중요했다. 급여를 안받고, 내 영혼을 갈아넣으면서 디자인에 매달려 밤낮없이 일하는 것은 보통 쉬운일이 아니였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것 같다. 현대 건축으로 유명하진 않지만 노동자의 인권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독일로 말이다. 여기 와서도 건축은 비슷했다. 야근도 많고 급여도 상대적으로 낮고 내 디자인보다는 소장님들의 디자인들이 우선시돼야했다.
디자인은 취향의 문제인데 왜 소장들의 것만 우선시돼야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까라면 까야지뭐. 내가 소장할 것도 아닌데, 난 의외로 정해진 규율과 사회적 틀에 잘 순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좋은 점은 소장한테 반말을 해서 나름 속이 풀렸고 내 의견이 가끔은 받아들여졌고 위계질서가 덜하다보니 일할때도 편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보상에 대한 목마름은 있었다. 외국인으로 모국어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내 급여는 올라가지 않았다. 일을 열심히 했는데도 보상은 적었다.
이직을 5년 일하는동안 3번을 했다. 그런거 보면 꼭 규율에 순응하는 타입도 아닌가보다.
결국 흘러흘러 공공기관에 왔다. 디자인도 안하고 실무적인 것들 위주로만 한다.
예산은 빠듯하지만 내 급여는 풍족하다.
디자인을 안하니 내 디자인이 반려될 일도 없다.
실무적으로 프로젝트 관리를 하니 빨리빨리 민족인 한국인으로서 일하는게 수월하다.
나 이제보니 프로젝트 관리하는걸 좋아했구나.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걸 재밌어하고 프로젝트가 지연될땐 스트레스받는데 이게 잘 풀리고 나면 쾌감이 몰아쳐온다.
이거지. 하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퍼진다.
사적인 곳에서는 사람들과 논쟁을 좋아하는 나였는데 일적으로 들어가니 사람들과 조율하는걸 좋아했다.
저절로 감사하단 말이 입에 붙는다.
원하는 스케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친절할 준비가 되어있다.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니여서 말을 잘 못하고 좌절하면서도 전화하는게 재미있다.
전화를 계속 미루다가도 일단 전화를 하고 나면 속이 풀린다.
전화를 하기 전에는 어떻게 말해야하는지, 뭘 요구해야하는지 머릿속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것인지를 고민한다. 고민해봐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고 질질 끈다는 생각에 짜증이나 일단 전화를 건다.
생각했던 것 보다 독일인들이 친절한 때가 많았다. 얘네도 수주를 해야해서 그런가, 가끔 전화로 스몰톡을 할때도 있다.
보통의 독일인들 만큼 길게는 아니지만 웃으며 맞장구를 칠때가 내 자신이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전화를 하고 나면 해냈다라는 만족감이 오래도록 잔상이 남았다.
그렇다고 회식이나 동료들간의 화합을 위한 사적모임이 또 즐거운건 아니다.
참 이상하다. 편안하게 만나는 자리보다 일적으로 만나서 스케줄을 조율하는게 더 편하고 재밌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소장님이 낀 회식자리는 항상 불편했다. 하지만 공사현장에서 목수아저씨와 떠들고 업무를 요청하는건 재미났고 신이 났다.
일을 하면서 나에 대해서도 알게된다.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나는 나로 살아왔고 그렇기 때문에 나에 대해 잘 알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이직을 통해서 얻었던 나에 대한 앎들은 또 다른 세상을 열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