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계약서에 서명하고 가장먼저 한일은 필름을 맡긴일이다.

그동안 참고있다가 드디어 맡겼다.

 

그리고 어제 받았다. 생각보다 빠른 독일의 일처리에 놀랐다. 

 

네번째 롤에서 열아홉번째롤로 순서가 확 뛰었으나... 그 사이에 찍은것들은 차차 올리기로 한다.

나는 매우 게으르다.. 이러다간 아무것도 못올릴꺼 같아서 일단 가장 최근것 부터 올려보기로한다.

 

필름은 씨네스틸 50D

영화필름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색감도 괜찮았으나 스캔한것 마다 이상한 얼룩이 있다.

처음에는 독일 현상소가 이렇지 뭐 했는데 알고보니 필름 자체의 문제였다. 하하하하

인터넷 뒤져보니 영화필름을 사진필름으로 현상하면서 이런게 생긴다고 하는데 뭐,

그냥 효과려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Cinestill50D

 

 

 


 

 

 

Rollei35|Cinestill 50D

 

마인츠에서 처음 한달 머물렀던 집.

발코니가 있어서 좋았다.

집도 넓고!!

 

 

Rollei35|Cinestill 50D

 

 

비스바덴에서 벼룩시장같은게 열린다고해서 마인츠에서 비스바덴으로 나들이 갔던날.

 

 

Rollei35|Cinestill 50D

 

 

 

Rollei35|Cinestill 50D

 

아마도 비스바덴가는 역?

 

 

Rollei35|Cinestill 50D

 

Rollei35|Cinestill 50D

 

 

비스바덴에서 낮맥주를 마시려고 들어간 카페이다. 처음엔 날씨가 좋아서 바깥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어디서 종업원이 오더니 여기 예약된 자리라고 안으로 들어가라고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백퍼 인종차별이 였던거같다. 왜냐하면 외부자리에 우리가 앉을때 분명 빈자리가 많았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들도 앉았는데 우리한테만 예약석이라고 했던점.

평소 예약자리에 볼수있는 예약석이라는 표시가 없었기때문이다.

하지만 이땐 그걸 몰랐고 (온지 일주일쯤되었으니) 말도 잘못해서 물어보지도 못했다.

근데 더 짜증난건 주인도 백인이 아니였음 ㅡㅡ 

웬지 기분나쁜 찜찜함을 안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다행히 저 가수가 노래를 잘불러서 뭐 좋게생각하기로 했다.

 

 

Rollei35|Cinestill 50D

 

비스바덴의 코메르쯔방크.

누가 설계했을까

 

 

 

Rollei35|Cinestill 50D

 

마인츠에서 머물렀던 집 근처 트램정류장

 

 

Rollei35|Cinestill 50D

 

마인강. 날씨좋아서 술들고 나갔었음

 

 

Rollei35|Cinestill 50D

 

그렇게 지내고 이사와서 어느덧 여름이되어 마인츠 와인축제를 갔었다.

좋았는데

올해도 가고싶다.

올해는 많이 마시고싶다. 맘껏, 양껏, 이제 돈도버니까

 

 

 

 

Rollei35|Cinestill 50D

 

그리고 이제 겨울 얼마전 함부르크 여행!

외준생이여서 3만보걸었던 여행!

함부르크 구시청사.

 

 


 

필름이 비싸고 색감이 특이해서 그런지.

이번 사진은 마음에 드는게 많았다.

필카의 장점은 보정할 필요가 없고,

얼룩이 지면 진대로의 매력이 있고 초점이 나가면 나간대로의 매력이 있다는점.

아주 보정 귀찮아하고 사진 잘 못찍는 나에겐 이렇게 찍으나 저렇게 찍으나 맘에 드는 사진이 많이 나오는 필카가 좋다.

그래도 지금보다 조금은 더 잘찍고 싶다.

 

 

  1. :::::: 2020.02.04 02:53 신고

    와 사진에 갬성이 흘러내려요 ㅎㅎ!

 

하노버 TU 도서관. 정말 열심히 찾았다. 도서관 내부는 끝내준다.

 

월요일이다.

여러 회사들의 답변을 기다리며 그동안 무엇을 했고 몇 회사에게 보냈고 인터뷰를 봤는지 후기삼아 남겨보기로 한다.

 

일단 독일어를 배웠다. B2과정까지 배웠다.

그리고 룸메인 엡루와 거의 매일 저녁을 요리하면서 수다를 떨었던게 독일어 듣기에 많이 도움되었던거같다.

인터뷰를 보는데 대부분의 말들을 알아들을수 있었다.

하지만 말을 그만큼 못한다는게 함정이지만 5월부터 현지에서 A2부터 공부한거 치고는 괜찮은 성과인것 같다.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학부랑 대학원때 포트폴리오는 만들었으나 파일이 다 날라가서 고민하다가 그냥 실무경력만 있는걸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각기 다른 구조로 설계한 세개의 프로젝트만 정해서 빠르게 만들었다.

일단은 한국어로 만들고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도 한국어로 먼저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모든것을 똑같이 번역한건 아니고 그 흐름만 생각하면서 다시 독일어로 바꾸고 그걸 엡루한테 가져가면 엡루가 새로운 글로 완성을 시켜준다.

그러면 나는 다시 그걸 받아적고 고치고 다시 엡루가 한번더 검사를 하고 그리고 그걸 포트폴리오에 적었다.

정말 엡루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ㅠㅠ 너무 고맙다. 빨리 취업해서 갚고싶은데 ㅠㅠ 맘처럼 잘 안된다.

그리고 상세도면에 들어가는 자재이름들을 대학도서관에 가서 직접 Detail 잡지를 찾아보면서 하나하나 다 독일어로 고쳤다.  

 

회사는 여러 블로그를 보면 구직사이트를 알려줬는데 나는 Architektenkammer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공고 올라오는거에 보내고 직접 구글맵에 검색하면서 그 사이트를 들어가서 구직을 하는지 확인한후 구직한다고 쓰여있으면 보냈다.

구직사이트에는 내가 사는 도시인 하노버 설계사무소가 적게 올렸고 이것보다는 저 카마 사이트에 많았으며 또 카마 사이트보다는 자기네 웹사이트에 구직한다고 올려놓는게 더 많았다.

나중엔 정말 하나하나 다 들어가면서 확인했다. 온갖 사무소를 알게되었다.

 

그리고 제본을 했고 총 지금까지 딱 20개의 회사에 보냈다.

처음 보냈을땐 14개 회사에 12월에 보냈고 그 중 2개만 인터뷰 하자는 답장이 왔다.

한군데는 큰회사 한군데는 작은회사 어쨌든 나는 인터뷰를 엡루와 준비하기 시작했다. (고마워 엡루)

 

큰회사에선 정석대로 인터뷰를 하고 그들은 나를 흥미롭게 봐줬다.

내 프로젝트도 되게 흥미롭게 봐주고 놀라워했다. 분위기 좋아서 나름 기대했는데 거절했다.

끝날때 부른 연봉이 좀쎈것같다고 했는데 그리고 몇일있다가 다른 사람을 뽑았다며 연락을 줬다.

사실 이것도 연락주기로한 날짜에 연락이 안오고있어서 전화도 해봤다.

(아니 독일인들 시간관념이 철저하다며!!! 뭐냐!!)

 

실망을 안고 두번째 회사 면접을 준비했다.

 

두개의 회사에서만 면접을 봤지만 인터뷰는 대충 비슷한것 같다.

처음엔 항상 자기소개를 한다.

나는 어디 국적이고 나는 어디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블라블라 그래서 내가 한 경험 블라블라 말한다.

그리고 이제 내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어쩌다 우리회사를 알게됬냐,

그런거 질문하고 각종 스몰토크와 사소한 질문들에 대해 답변하고 그리고 연봉질문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작은회사에선

프로젝트 설명하는 시간이 생략되었다.

이상했던게 작은회사는 다섯명이 정원이였는데

들어가자마자 한명의 여성분이 나를 데리고 회의실로 가서 아 이분이 소장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회의실로 가는데 직원들이 다같이 일어나서 할로 구텐모겐을 외쳤다. - 1차 당황

그리고 가서 앉더니 그여성분이 마주앉아서 주절주절 우리회사에선 많은 프로젝트가 있는데 호텔도 있고 보눙도 있고 어쩌고저쩌고 다 혼자하고 디자인부터 실시까지 하고 주절주절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을 했다. -2차 당황

그러더니 일어나서 차줄까 물줄까 물어봤다. 물줘. 했는데

컵을 네개를 가지고오는 것이였다. - 3차 당황

그래서 아 뭐야 직원들 다 모여서 나를 인터뷰보나 싶었는데 그 소장이라고 생각했던 여성분이 자리로 돌아가고 아까 일어서서 인사했던 세명이 들어오더니 인터뷰를 시작했다. -4차당황

알고보니 이 3명이 소장이였던거 같다. 

그리고 아 이게 내 이력서다 하고 이제 이력서를 주었는데 포트폴리오를 가져가더니 자기네들끼리 돌려서 보면서 나보고 이제 자기소개부터 해봐. -5차 당황

그래서 자기소개 했는데 끝나고 나니 이미 포트폴리오는 다 돌려봤고... 정말 빠르게 면접이 30분정도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말하는게 쓰고 있는 프로그램도 다르고(여긴 아키캐드를 많이 쓴다.) 너가 독일어를 짧은시간에 잘 하는것 같긴 하지만 우리는 업체와 상의도 해야하고 전화도 받아야한다. 우린 너가 우리와 맞는지 알수가 없다.

1주일간 무료로 프로베자이트를 해보고 우리가 너를 결정하는건 어떻게 생각하냐 - 6차당황.

하지만 알겠다. 나는 작년 5월부터 독일어를 배웠으니 너희들을 이해한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연봉은 첫회사의 아픔으로 신입사원이 받는 금액부터 내 경력까지 받는 금액으로 불렀다.

(여기부터 여기사이를 원한다고 함)

그러더니 확답은 안주고 우리가 나중에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하하하 심지어 날짜도 안알려줬음.

하지만 내 디자인, 내 프로젝트는 굉장히 긍정적이였고 잘했다고 했고 좋아했다.

나는 이것만으로 일단 위안을 삼기로 했다.

그리고 다양한 실시를 경험했다는게 큰 도움이 되었다. 3년동안 일하면서 목구조, 철골, 철근콘크리르를 다 실시설계하는 경험을 가졌던게 장점이 되었던거 같다.

 

결과에 상관없이 내 포트폴리오가 살짝 먹히는 곳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똥줄이 타는중 ㅠㅠ

어디 한군데라도 되었다는 연락이 왔음 좋겠다.

이 인터뷰 이후에 다른 여섯군데의 건축사무실에 이력서를 보냈다.

흑흑 ㅠㅠㅠㅠ 취업하고싶다.

 

 

  1. :::::: 2020.01.21 19:17 신고

    저도 똑같은 상황을 지나와서 공감이 많이 되네요 ㅎㅎㅎ 조만간 좋은 소식 있을것같네요 ! 응원합니다 !

    • 감사합니다 :) 저도 독일 오기전에 도이치아재님 블로그보면서 도움 많이 받았어요! 비록 저 회사도 떨어졌지만 ㅜㅜ 하는데까지 해보려구요! 응원감사드려요!

 

독일에서 만든 실무경력 포트폴리오

 

 

그저께 처음으로 본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실패한 걸 적어놔야겠다.

실패를 기록한다는 것은 어려운일인 것일 수도 있다.

큰소리 떵떵 치면서 자신 있게 외국으로 나왔는데 더군다나 실패를 했다는 것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나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실패를 기록해서 나는 이런 기록을 통해 그냥 있는 그대로 나의 삶을 남기고 싶었다.

원래는 단번에 성공하면 성공을 좋아라 하면서 쓰겠지만, 그게 아녔으니 실패에게도 공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썼다.

사실 말이 실패지 결국 이런 것도 다 경험이다.

이런 실패를 30대 초반에 해봐야지 40대 되면 무서워서 시도도 못한다. (자기 합리화 중)

실패라는 게 별건가, 어제까지 졸라 침울해하고 있었음.  센 척 중

그리고 뭐 내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이 내 실패를 보고 안도했으면 좋겠다.

여기 이렇게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답니다. 

 

첫 번째 실패 아닌 실패는 한국에서 건축으로 적응하기.

실패아닌 실패라고 적은 것은 어떻게 보면 적응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이렇게 뛰쳐나온 거 보면 적응을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대략 3년 정도의 설계사무소 경험이 있다.

한국에서 좋아라 하는 형식상의 경험은 2년 6개월이지만, 인턴에도 나는 혼자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무튼 3년이다.

그중 첫회사에선 약 7개월 정도를 경험하고 나머지 사무소에선 2년 3개월 정도를 경험했다.

 

한국에서 학부로는 건축의 배움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대학원까지 진학했고 결과는 만족했다.

좋은 지도교수님을 만나고(지도교수님도 한번 바꿈) 양질의 수업을 들었다.

건축이론과 건축 철학이 바로 그것.

무튼 지도교수님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했던 교수님의 소개로 하나의 건축사무소에 들어가는데,

정말 쓰레기였다.

사실 첫 번째 지도교수님도 심했다. 말로 모욕감을 줬고, 열정 페이가 대단했으며 시급 한 천 원? 그리고 좁은 사무소에서 일을 같이할 때 매너가 없었다 (방귀 뀌기, 트림하기,)

가장 심하게 들은 말은 "넌 왜 그렇게 생겼어? 넌 감정이 없어? 왜 이렇게 안 웃냐?" 

지금은 다른 과가 언론에 인격모독으로 많이 발각돼서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고 들었지만,

설계 수업에서 내 인격은 종종 사라졌다. 노력은 안 한 것도 아니었다. 점수도 그럭저럭 받았고 잘 받았을 때도 있었다.

대부분의 수업들은 뭐 별 탈 없었지만 그 몇 번의 말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무튼 그런 것들을 거쳐도 건축이 좋았다.

교수님이 뭐라고 하던 나발을 하던 내 마음에 들고 완성도 있는 작업을 했으면 그때의 뿌듯함은 말할 수가 없다.

거기에 외부 교수님의 칭찬이나, 담당교수님의 칭찬이 있을 때면 그때의 성취감으로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론도 재밌고, 좋았다.

 

그래서 큰 회사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선배들이 가면 맨날 피피티만 만들거나 현상만 할 거라고 겁을 줬고 분업화 되어있는데서 내가 하나만 하기에는 싫었다. 

그래서 작은 회사를 가기로 마음먹었고 교수님의 소개로 들어가게 되었다.

프로젝트도 괜찮았다.

하지만 소장님이 안 괜찮았다.

 

일단 연봉 나누기 13. 처음 회사니까. 넘어갔다.

휴가는 5일. 주말 붙여 쓰면 열흘 가능하다고 개소리했음. 처음 회사니까 그러려니 했다.

야근은 기본, 하지만 야근비는 없음. 처음 회사니까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혼자 자취하니 빠듯하게 살기 시작했다.

소장은 닛산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아들은 골프를 시켰고 아들 차도 법인차로 뽑았다.

 

게다가 소장은 내 디자인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고함을 질렀다.

내가 소장의 디자인이나 주택이 진짜 잘한 거나 세련되었거나 뭐 그러면 말을 안 한다.

촌스러웠다. 그러면서 나보고 매일 지랄을 했다. 솔직히 지나 나나,

심지어 대리가 내 디자인을 까서 바깠는데, 대리 말대로 한 디자인을 까고 또 지랄을 하면서

내가 원래 했던 디자인으로 자기가 그리는 것을 보면서, 뭐야 너나 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면도 못 짠다면서 지랄했다. 구조도 모른다면서 지랄을 했다. 나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랬다.

지랄을 할 땐 항상 고함을 쳤다.

내가 집에 가서 혹은 화장실에서 울기 시작했다. 하 진짜 이때만 생각하면 화가 난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마다 새벽 네시까지 회식을 했고, 건축주 미팅이 다른 날 있으면 그때도 회식을 했다.

회식을 하면서 집에 간다고 하기가 무서워서 술집 밖에 주차장 기둥에 기대서 졸다가 들어갔다.

술도 매일 강요했다. 

이렇게 씨발 같은 나날들을 6개월 지내고 나니까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련하지도 인내심이 많지도 않아서 결국 회사를 다니며 몰래몰래 이력서를 썼다.

 

그렇게 두 번째 회사에 합격을 했다.

그만둔다고 하는 게 무서워서 엄마를 팔았다. 엄마가 아프다고 집에 내려가야 한다고 뻥을 쳤다.

거짓말이 들킬까 무서워 울면서 연기했다.

절박했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회사에 갔다.

소장님은 쿨했고 젊었고 꼰대가 아니었다.

디자인도 내 제안을 웬만하면 수용해주셨고 재료 선택에서 내 논리와 근거만 명확하면 내뜻대로 했다.

현장에도 나가서 직접 체크하고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직접 했다. 재밌었다.

어려운 것도 많았지만 지나고 나면 다 내 살이 되고 피가 되었다.

사내 분위기 또한 수직적이지 않았고 노동법이나 정부 현안에 대해 침을 튀기며 비판하는 소장님이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퇴직금도 있었고, 급여는 적었지만 법정휴가도 있었다.

내가 스케줄에만 맞추고 해야 할 일들을 그때까지 끝낸다면 야근도 없었고 눈치도 주지 않으셨다.

리프레쉬 휴가라고 5년 일하면 무급으로 한 달 쉴 수 있는 제도도 있었다.

회식도 많이 하지 않았다.

회식은 항상 이탈리아 레스토랑 집에서 했고 술도 권하지 않으셨다.

괜찮은 회사였다. 급여가 적었지만 상관없었고 일이 즐거웠고 재밌었다.

하지만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다.

국민연금과 기타 등등의 4대 보험료를 안 내시고 있었다.

노동에 대해 침을 튀기면서 이야기하고 한국이 어떤 사회로 나가야 하는지 매일 얘기하면서도

자기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재정이 엉망이었다.

첫 달 급여를 잘 받고 그다음 달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3일, 4일, 5일, 어쩔 땐 열흘도 밀렸다.

 

아 안 되겠구나 싶었다. 

예전에 일했던 동료의 말을 들어보니 지금은 2개월 밀려있다고 했다.

그만둘 때 침몰하는 배에선 먼저 뛰어내리는 사람이 승리자라고 하면서 약올리면서 그만뒀는데 정말 내가 승리자였음

 

건축 프로젝트들은 정말 재미있었는데, 항상 상황이 그지 같았다. 첫 번째 건축사무소도 프로젝트와 건축주들은 좋았다.

작업환경이 왜 이럴까,

 

왜 제대로 된 회사가 나에겐 없을까.

야근 없이 일하다 보니 야근 있는 회사로 옮기는 게 싫었다.

그래서 고민을 했다.

 

사실 독일도 마찬가지로 건축이 박봉이다. 거기에 세금이 엄청 많다.

그래도 독일로 온건 사람답게 일하고 싶어서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급여 제때제때 나오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허가기간이 최소 3개월이라는 점.

사실 이게 컸다. 한국은 허가가 한 달이면 나는데 소장님은 3주에서 2주로 항상 앞당겨서 받길원했다.

그러다 보면 실수가 잦고, 건축주는 보채고, 소장님은 나를 보채고, 나는 공무원을 보채야 하고

그럼 공무원이 화가 나서 더 느리게 하거나 나에게 맨날 화를 낸다.

악순환의 고리였다.

그래 최소 3개월 6개월이고 길면 1년인데 그럼 최소한 나를 맨날 쪼으진 않겠지 싶었다.

그래서 사실 독일에 오게 되었다.

별거 바란 건 없었고 환상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노잼의 나라, 세금 40프로, 의료도 별로, 인종차별, 언어 개 어려움, 등등 맨날 부정적인 거 찾아봤다.

그래도 뭐 이 1년 실패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100세 인생에서 얼마나 그렇게 차지한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왔다.

 

 

  1. 2020.02.07 15:56

    비밀댓글입니다

  2. 2020.02.09 17:08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