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욱과 정영진의 매불쇼를 좋아한다. 너무 웃겨서 매일 듣는데, 매불쇼의 묘미는 금요 영화코너에서 패널들과 최욱 정영진이 추천하는 영화를 보는 것이다.

저번엔 티탄을 봤다가 망했지만 망한것도 나름 의미는 있다. 비록 괴랄했지만 티탄에 나온 음악들은 내 취향과 딱 맞아서 요즘도 즐겨 듣는 내 음악리스트가 되었다.

무튼 저번 금요일에는 최욱이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추천했고 웬지 제목부터 땡기고 인간 내면에 대한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어제 보았다.

 

역시. 

소설 원작이라 그런지 나레이션도 있고 가끔 시간이 빨리 흐르기도 하고 뭔가 뛰어넘었다 라는 생각을 들게하지만

영화 자체는 좋았다.

 

 

배경은 미국 1950년대,

한 미군이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참혹한 현상으로 죽어가는 것을 주인공 아버지가 발견하고 총으로 사살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연관 없을 꺼 같은 악마로 보이는 각기 다른 인물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고 그 중심에는 주인공이 있다. 이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은 바로 기도하는 장면과 교회 가는 장면.

그리고 종교가 있거나 없거나 이 악마들은 본인의 방식대로 악행을 저질러간다.

 

죽어가는 주인공의 엄마를 살리기 위해 가족이었던 개까지 죽여서 제물로 바쳐가며 기도하는 아버지.

연쇄살인을 저질러가며 몸부림치는 희생자들의 사진을 찍을 때 신을 느낀다던 살인자.

그리고 그의 애인. 

온갖 부패를 저지르고 마지막엔 살인까지 일삼으며 선거를 나가려고 하는 마을 보안관.

자신의 교회 신도들을 꼬드겨 위계관계에 의한 성폭행을 저지르고 잘 살았던 목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들 모두를 살인으로 처단하는 주인공.(비록 계획성은 아니었다. 한 사람만 빼고)

이 모두가 악마인 것이다.

 

처음 시작이 전쟁이라는 사실도 나에겐 의미 있었다.

아군과 적군이란 이유 단 하나만으로 서로를 살상해야 하는 상황 그 자체가 악마 같았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본인이 저지르고 있는 악행에 대해선 한치 망설임도 없는 사람들.

그리고 중요한 건 항상 본인이 악마가 되느냐 안되느냐의 선택의 기로는 항상 짧게 그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 악마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저 주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리고 한 번도 폭력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비록 그 들 중 반은 악마들에게 희생양이 되고 말지만,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에 하루를 꼬박 걸은 주인공이 히치하이킹으로 또 다른 차를 타며 졸음을 참지만 서서히 눈이 감기며 그의 잡다한 생각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영화에 나온 악마들을 처단하며 그곳에 죽일만했다는 정당성을 부여하고 본인은 미래 생각을 하며 한치의 죄책감도 없는 주인공을 보며 악마는 주인공 안에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 히치하이킹으로 얻어 탄 차의 차주 또한 악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편으론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의 바탕엔 50년대 기독교가 깔려있어서 항상 신을 찾고 기도하고 목사의 설교하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광기적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뒤에선 할 거 다 하고 더러운 모습들이 위선적이고 웃기다.

 

이 영화는 사실 종교와 인간의 악마적인 본성을 다루는 조금 흔한 일반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특별한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었다.


스포유. 스포유!!

영화 감상에 앞서서 일단,
내가 이 영화를 다보고 바로 그 즉시 든 생각.
1. 이게뭐야
2. 도대체 뭐지
3. 프랑스 감독이 상받은 영화는 이제 다시 안볼것이다.

사실 예전에 영화가 개봉할때 차랑 사랑을 나누고 임신하게 되는 영화라고만 알고있었는데,
자주 듣는 매불쇼 영화코너에서 세 평론가가 추천하기에 얼마나 재밌을까 하며 보았다.

이 영화는 처음에 알렉시아가 사고를 당해서 머리에 티탄을 이식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친아버지가 알렉시아에게 했던 무심하고 관심없는 행동들, 그리고 그 행동은 알렉시아가 성인이 될때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알렉시아는 차앞에서 춤을 추는 일을 하며 남성들에게 추파를 받고,
하지만 알렉시아는 남성, 혹은 여성에게도 사랑을 느끼지 못하며 차에게 사랑을 느끼고 차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차 앞에서 알렉시아의 춤으로 구애를 하고 마지막엔 사랑을 나눈다.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설명을 들을 당시, 아니 차랑 어떻게?? 사랑을 나눠??? 했는데, 나누더라……
그리고 그 이후에 알렉시아는 원인모를 반사회적 행동, 그러니까 살인을 하다가 경찰에게 수배를 받게되고
그 와중에 차와의 사랑으로 임신을 하게된다.

경찰에 쫒기다가 꾀를 써서 실종아동으로 남장을 하고 그 실종 아동의 아버지였던 뱅상 랭동과 같이 살게된다.
자신의 배와 가슴을 압박붕대로 감아가면서 눈썹도 다 깎고 본인의 코뼈를 부러뜨려가며 남장을 한다.
뱅상 랭동은 소방관으로 일하며 본인이 늙어가며 잃어보리고 있는 남성성에 집착하여 스테로이드제를 중독적으로 맞는 사람이다.
뱅상 랭동은 나중에 알렉시아가 본인의 아들이 아닌 것을 알게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둘은 가족애를 느끼게 되고, 종국엔 알렉시아가 차의 아기를 출산하게 되며 알렉시아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보고 나서 몇가지 글이나 기사를 읽고 정리해본 결과,
이 영화는 크게 두가지 흐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재 구성된 가족 그리고 두번째는 신체 변형을 통한 탈젠더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국과 비슷하게도 프랑스도 남보다 못한 가족이 많은 것 같다.
여기서 나오는 알렉시아의 가족과 뱅상 랭동의 아내 또한 남보다 못한 가족이다.
알렉시아의 아버지는 알렉시아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그의 어머니는 알렉시아를 그냥 표면적으로 좋게만 지내며 그녀에게 노골적으로 관심없고 신경질적인 아버지보다 그다지 비중이 없게 나온다.(그리고 알렉시아는 불로 본인의 부모를 죽임.)
뱅상 랭동의 아내는 알렉시아가 그들의 실종된 아들도 아니고 심지어 임신 사실도 알게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은채 단지 뱅상 랭동을 끝까지 책임지란 말만 하고 떠난다.

그리고 그 둘이 부자, 혹은 부녀의 관계로 엮이게 되면서 그 둘의 친가족보다 더한 가족애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종국에는 알렉시아가 출산의 진통이 시작됬을때 뱅상 랭동도 자기의 배에 불을 붙이는 행동을 하며 뭔가 연결된 씬을 보여주는데,
나는 이를 통해 감독은 우리에게 이 둘이 가족으로 연결되었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제 탈젠더.
남성성에 집착하는 뱅상 랭동과 처음엔 여성성으로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남장을 위해 여성성을 버리지만 그렇게 남자도 아닌 거같고 그런 애매한 모습의 알렉시아,
그리고 임신의 과정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움과 여성성은 정말 하나도 없다.
배가 불러올 수록 기괴해지는 그녀의 신체, 그리고 종국에 출산을 임박했을 때의 그녀의 모습은 거미같기도 하고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상했다.
나는 아무래도 같은 여자라 그런지 뭔가 더 와닿았던것도 같고 하지만 남친은 남자인데도 이상하다고 이야기 한걸 보면.. 그냥 이상했던것 같다.
사실 이상하다는 것보다 한층 더 심오하게 이상한.. 괴랄하다고 하면 딱 들어맞을 것 같다.
임산부를 아름답게 그리는것도 괴기하지만, 저렇게 괴랄하게 그리는것도 뭔가 불편하다.
또한 마지막에 알렉시아가 중성적인 모습으로 소방관 복장을 하고 소방차에서 처음 장면과 같은 똑같은 섹시춤을 추는데 그녀를 더이상 성적인 눈빛으로 보지 않고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남성들이 대조를 이루었다. 이것을 통해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비판하고 싶었던것 같은데, 난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소방차에 대한 구애의 춤 아니였을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앞의 임신할때처럼과 비슷하게 춤을 춘 이후 소방차와 사랑을 나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관념, 즉 차를 남성성의 대표적인것으로 상징하는데 이 감독도 거기에선 아직 벗어나지 못한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차와 알렉시아가 흔히 보는 남성과 여성들처럼의 사랑을 나누었을리가 없다.

남성성에 집착을 한다고(뱅상 랭동처럼) 남성이 되는것인가, 아님 알렉시아처럼 여성도 남성도 아닌 모습을 한다고 탈젠더가 되버리는 것인가.
그것에 대한 내 대답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남성이 남성성을 가지게 되면서 얻게되는 불평등한 이익이나 권력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여성이 여성성을 얻으면서 얻게되는 성적인 대상화를 비롯한 고정적인 이미지에 대해 비판적인 것이지, 성, 젠더 그 자체를 탈피한다는 생각은 아직은 모르겠다. 아니 탈젠더가 과연 가능한 것인가.

오히려 남성이 남성성을 추구한다던가 집착 혹은 그 반대의 행동, 또는 여성이 여성성을 추구, 집착 혹은 탈피한다는것
모두 그 개인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뱅상 랭동이 늙어가며 잃어가는 자신의 남성성에 스테로이드로 집착을 하는 모습 또한 얼마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인가.
그에 비해서 차와 사랑을 나누고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은 알렉시아의 모습은 나에게 뱅상랭동만큼 와닿지 않았다.

“괴물을 받아준 칸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한다.”라고 말을 전한 줄리아 뒤크루나 감독.
나의 확대해석으론 괴물을 낳은 알렉시아와 이 감독의 말이 겹쳐 보이지만, 글쎄 이게 괴물일까.
혹은 그냥 흔한 현대사회의 가족 해채와 넓은의미의 가족의 재정의를 이상하고 괴기한 표현과 탈젠더라는 있어보이는 포장으로 감싸서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은건 아닌지.
여성성을 한껏 강조한 그 감독의 사진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몰라 난 어쩄든 얇팍한 내 머리론 이해가 고작 이정도이다. 매불쑈에서 세 평론가가 하는 이야기를 기대해봐야겠다.
결론은
상받은 프랑스 감독 영화 이제 절대안봐!!!!!!!!!!!!!!!!!!!!!!!!!!!!!!!!!!!!!!!!!!!!!!!!!

하지만 육칠개월만에 블로그 글을 쓰게끔 해준 거엔 감사한다.
아 근데 부분부분 나오는 음악은 진짜 너무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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