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루가 사온 케익과 샴폐인! 남자복은 잘 모르겠는데 내가 룸메 복은 확실히 있다! 

 

 

두달 뒤 울면서 짐싸면서 한국갈꺼같았던게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구직에 성공했다.

사실 완전한 성공은 아직 이르다.

 

여기는 6개월의 수습기간이 있고 나는 그 수습기간을 거쳐야 진정한 직원이 된다.

산넘어 산이고 퀘스트깨니 더 어려운 퀘스트가 나오는것같다.

비자퀘스트... 독일어 퀘스트.... 프로그램퀘스트... 회사적응 퀘스트.....휴....

 

먼저 나는 건축협회사이트를 둘러보면서 2개월내의 구직공고를 낸 회사에 지원했고

두번째는 구글맵을 펴놓고 쫙 한바퀴 돌면서 모든 독일 사무소의 홈페이지를 들어가보고 거기에 따로 구직공고가 있으면 지원했다.

그렇게 20군대를 지원하고 인터뷰 달랑 두개를 얻었다.

그리고 인터뷰 두군데에 탈락.

둘다 좋은느낌이였는데!!!!

 

그리고나서 이제 나는 절망하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누구인데요. 물어보고싶은게 있는데 거기 자리있나요?"

그렇게 한 열군데에서 "응 한번보내봐" 라는 대답이 온곳이 열네군데 정도 있어서 보냈다.

그리고 거리가 참 먼 브라인슈바익에 두군데에도 냈다. 취업만 하자는 목표로

 

문의와 전화돌리고 지원한곳을 치면 총 45군데쯤 들쑤시고 다닌것같다.

 

그렇게 또 거기서 두개의 인터뷰를 보게되었다.

 

최종적으로 나를 뽑은 회사는 3명의 소장과 한명의 건설파트너.

그리고 사무소에 중국인 직원 1명과 한국인 직원1명이 더 있었다.

나는 이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이들이 동양인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뽑힌거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바보같은 짓을 하나했는데.

금요일날 이른 오전에 나를 뽑은 사무소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분명 나에게 월요일날 연락을 준다고해서 알겠다고했는데, 오후에 전화가 왔고,

전화에 익숙치 않은 나는 그 사무소를 다른사무소로 착각하고 만다.

(전화번호를 저장했었어야지 이 등신아ㅠㅠㅠ)

"월요일날 계약을 위한 인터뷰를 보자. 2월부터 일을 시작해야하니까 어쩌고저쩌고"

나는 '와 이회사는 나를 인터뷰하기도 전에 계약이야기를 꺼내네 내가 되게 맘에 들었나봐~'

하고 혼자 좋아했다. (미쳤던거같음) 

그리고 월요일 열시에 그 잘못된 사무소를 갔는데

소장도 없고, 직원이 좀 있다가 "너 약속있는거 확실하니? 소장이 약속 없다는데?"

무슨 소리냐 하면서 단호한 표정으로 "아냐, 약속있어."

"소장이 약속없다고 나중에 연락준다고 지금 미팅못하니까 나중에 오래"

"알겠어"

(속으로 예의가 없다고 궁시렁거렸음)

그리고 나와서 부재중전화가 있길래 전화를 했다.

 

그 나를 뽑은회사였다.

"어쩌고저쩌고 오늘 약속을 하고싶은데 어쩌고저쩌고" 라고 말하는거보면서 올타커니 나랑 계약하겠구나 싶어서

"나 오후에 될꺼같아" 라고 말하고 오후 두시로 약속을 잡고 갔더랬지.

 

나를 보면서 소장이 하는말

"오늘 열시에 왜 오지 않았어?"

"??????????????!!!!!!!!!!!!!!!!!!!!!!!!!!!!!"

그렇다. 나는 다른 사무소가서 앉아있었던 것이다.

와..... 그때부터 등에 소름이 돋고, 내가 미안하다고... 계약서에 사인하면서

와..... 나 취업못할뻔했네????

소장은 문제없다면서... 그러길래 내가 아 나 다른회사인줄알고 다른회사가서 앉아있었다.

하니까 어이없게 웃더라........

그러면서 "월요일 출근인건 알겠지?"

"응!! 하하;;; "

 

하하하하하 내첫인상 존망......

나 독일어 잘한다고 칭찬받고, 한껏 자신감있는 태도로 프로그램도 독일어배우는것과 같이 빨리배울수있다고 큰소리쳤는데...휴...

심상치 않다 정말 나를 죽이고싶었다.

 

그리고 그 다른 사무소는 정말.... 얼마나 황당했을까... 심지어 집 바로 코앞에 있는 사무소인데,

웬 동양인이 테어민도 없는데 있다고 앉아있고.......... 바꿔 생각하니 무섭다......

 

 

 

무튼 이제 한단계는 가까스로 통과했으니 다음은 수습기간을 원할하게 거치고 정식직원이 되는게 다음 목표가 되었다.

 

열심히 하자 정말!

 

 

독일에서 설계사무소에 일하고 싶다면, 프로그램 아키캐드를 익혀서 오는것도 좋은것같았다.

(그리고 인터뷰 본 회사 전화번호를 꼭 저장할것....꼭....)

다른도시는 잘모르겠지만 하노버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아키캐드를 많이쓴다.

래빗도 종종봤는데 정말 드물고 대부분 아키캐드였다.

오늘부터 열심히 유튜브보면서 배우려고 한다.ㅠㅠ

첫인상 만회하기!

  1. Hyedy 2020.01.29 02:53 신고

    취직하신거 너무 축하드려요!! 🎉인터뷰 본 회사의 번호 저장하기..좋은 팁이네요!!
    타국에서 같은 한국인 한 명만 있어도 반가운데 같은 회사에 한국인이 있다니 너무 부럽습니다
    앞으로 회사 생활도 잘 풀리시길 바랍니다~!

    • 현실적낭만주의자 2020.01.29 03:00 신고

      감사합니닷!!! 저도 워홀 비자로 와서 비자 바꾸는 포스트 보고 도움 많이 얻었어용
      함부르크에 맛있는 한인식당이 많아서 자주가게될꺼같은데 언제 한번 뵈어용!!

    • Hyedy 2020.01.29 03:08 신고

      헉 너무 좋습니다 🙌저는 언제나 함부르크에 있으니 오시기 전에 연락주세요!

    • 현실적낭만주의자 2020.01.29 04:01 신고

      네 연락드릴게요오😊

  2. 도이치아재 2020.01.29 18:42 신고

    축하드려요 ㅎㅎ 역시 좋은 소식 들릴 줄 알았어요 ㅎㅎ 나머지 일들도 착착 잘 풀리실거에요!!

 

독일에서 만든 실무경력 포트폴리오

 

 

그저께 처음으로 본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실패한 걸 적어놔야겠다.

실패를 기록한다는 것은 어려운일인 것일 수도 있다.

큰소리 떵떵 치면서 자신 있게 외국으로 나왔는데 더군다나 실패를 했다는 것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나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실패를 기록해서 나는 이런 기록을 통해 그냥 있는 그대로 나의 삶을 남기고 싶었다.

원래는 단번에 성공하면 성공을 좋아라 하면서 쓰겠지만, 그게 아녔으니 실패에게도 공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썼다.

사실 말이 실패지 결국 이런 것도 다 경험이다.

이런 실패를 30대 초반에 해봐야지 40대 되면 무서워서 시도도 못한다. (자기 합리화 중)

실패라는 게 별건가, 어제까지 졸라 침울해하고 있었음.  센 척 중

그리고 뭐 내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이 내 실패를 보고 안도했으면 좋겠다.

여기 이렇게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답니다. 

 

첫 번째 실패 아닌 실패는 한국에서 건축으로 적응하기.

실패아닌 실패라고 적은 것은 어떻게 보면 적응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이렇게 뛰쳐나온 거 보면 적응을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대략 3년 정도의 설계사무소 경험이 있다.

한국에서 좋아라 하는 형식상의 경험은 2년 6개월이지만, 인턴에도 나는 혼자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무튼 3년이다.

그중 첫회사에선 약 7개월 정도를 경험하고 나머지 사무소에선 2년 3개월 정도를 경험했다.

 

한국에서 학부로는 건축의 배움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대학원까지 진학했고 결과는 만족했다.

좋은 지도교수님을 만나고(지도교수님도 한번 바꿈) 양질의 수업을 들었다.

건축이론과 건축 철학이 바로 그것.

무튼 지도교수님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했던 교수님의 소개로 하나의 건축사무소에 들어가는데,

정말 쓰레기였다.

사실 첫 번째 지도교수님도 심했다. 말로 모욕감을 줬고, 열정 페이가 대단했으며 시급 한 천 원? 그리고 좁은 사무소에서 일을 같이할 때 매너가 없었다 (방귀 뀌기, 트림하기,)

가장 심하게 들은 말은 "넌 왜 그렇게 생겼어? 넌 감정이 없어? 왜 이렇게 안 웃냐?" 

지금은 다른 과가 언론에 인격모독으로 많이 발각돼서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고 들었지만,

설계 수업에서 내 인격은 종종 사라졌다. 노력은 안 한 것도 아니었다. 점수도 그럭저럭 받았고 잘 받았을 때도 있었다.

대부분의 수업들은 뭐 별 탈 없었지만 그 몇 번의 말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무튼 그런 것들을 거쳐도 건축이 좋았다.

교수님이 뭐라고 하던 나발을 하던 내 마음에 들고 완성도 있는 작업을 했으면 그때의 뿌듯함은 말할 수가 없다.

거기에 외부 교수님의 칭찬이나, 담당교수님의 칭찬이 있을 때면 그때의 성취감으로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론도 재밌고, 좋았다.

 

그래서 큰 회사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선배들이 가면 맨날 피피티만 만들거나 현상만 할 거라고 겁을 줬고 분업화 되어있는데서 내가 하나만 하기에는 싫었다. 

그래서 작은 회사를 가기로 마음먹었고 교수님의 소개로 들어가게 되었다.

프로젝트도 괜찮았다.

하지만 소장님이 안 괜찮았다.

 

일단 연봉 나누기 13. 처음 회사니까. 넘어갔다.

휴가는 5일. 주말 붙여 쓰면 열흘 가능하다고 개소리했음. 처음 회사니까 그러려니 했다.

야근은 기본, 하지만 야근비는 없음. 처음 회사니까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혼자 자취하니 빠듯하게 살기 시작했다.

소장은 닛산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아들은 골프를 시켰고 아들 차도 법인차로 뽑았다.

 

게다가 소장은 내 디자인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고함을 질렀다.

내가 소장의 디자인이나 주택이 진짜 잘한 거나 세련되었거나 뭐 그러면 말을 안 한다.

촌스러웠다. 그러면서 나보고 매일 지랄을 했다. 솔직히 지나 나나,

심지어 대리가 내 디자인을 까서 바깠는데, 대리 말대로 한 디자인을 까고 또 지랄을 하면서

내가 원래 했던 디자인으로 자기가 그리는 것을 보면서, 뭐야 너나 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면도 못 짠다면서 지랄했다. 구조도 모른다면서 지랄을 했다. 나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랬다.

지랄을 할 땐 항상 고함을 쳤다.

내가 집에 가서 혹은 화장실에서 울기 시작했다. 하 진짜 이때만 생각하면 화가 난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마다 새벽 네시까지 회식을 했고, 건축주 미팅이 다른 날 있으면 그때도 회식을 했다.

회식을 하면서 집에 간다고 하기가 무서워서 술집 밖에 주차장 기둥에 기대서 졸다가 들어갔다.

술도 매일 강요했다. 

이렇게 씨발 같은 나날들을 6개월 지내고 나니까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련하지도 인내심이 많지도 않아서 결국 회사를 다니며 몰래몰래 이력서를 썼다.

 

그렇게 두 번째 회사에 합격을 했다.

그만둔다고 하는 게 무서워서 엄마를 팔았다. 엄마가 아프다고 집에 내려가야 한다고 뻥을 쳤다.

거짓말이 들킬까 무서워 울면서 연기했다.

절박했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회사에 갔다.

소장님은 쿨했고 젊었고 꼰대가 아니었다.

디자인도 내 제안을 웬만하면 수용해주셨고 재료 선택에서 내 논리와 근거만 명확하면 내뜻대로 했다.

현장에도 나가서 직접 체크하고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직접 했다. 재밌었다.

어려운 것도 많았지만 지나고 나면 다 내 살이 되고 피가 되었다.

사내 분위기 또한 수직적이지 않았고 노동법이나 정부 현안에 대해 침을 튀기며 비판하는 소장님이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퇴직금도 있었고, 급여는 적었지만 법정휴가도 있었다.

내가 스케줄에만 맞추고 해야 할 일들을 그때까지 끝낸다면 야근도 없었고 눈치도 주지 않으셨다.

리프레쉬 휴가라고 5년 일하면 무급으로 한 달 쉴 수 있는 제도도 있었다.

회식도 많이 하지 않았다.

회식은 항상 이탈리아 레스토랑 집에서 했고 술도 권하지 않으셨다.

괜찮은 회사였다. 급여가 적었지만 상관없었고 일이 즐거웠고 재밌었다.

하지만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다.

국민연금과 기타 등등의 4대 보험료를 안 내시고 있었다.

노동에 대해 침을 튀기면서 이야기하고 한국이 어떤 사회로 나가야 하는지 매일 얘기하면서도

자기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재정이 엉망이었다.

첫 달 급여를 잘 받고 그다음 달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3일, 4일, 5일, 어쩔 땐 열흘도 밀렸다.

 

아 안 되겠구나 싶었다. 

예전에 일했던 동료의 말을 들어보니 지금은 2개월 밀려있다고 했다.

그만둘 때 침몰하는 배에선 먼저 뛰어내리는 사람이 승리자라고 하면서 약올리면서 그만뒀는데 정말 내가 승리자였음

 

건축 프로젝트들은 정말 재미있었는데, 항상 상황이 그지 같았다. 첫 번째 건축사무소도 프로젝트와 건축주들은 좋았다.

작업환경이 왜 이럴까,

 

왜 제대로 된 회사가 나에겐 없을까.

야근 없이 일하다 보니 야근 있는 회사로 옮기는 게 싫었다.

그래서 고민을 했다.

 

사실 독일도 마찬가지로 건축이 박봉이다. 거기에 세금이 엄청 많다.

그래도 독일로 온건 사람답게 일하고 싶어서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급여 제때제때 나오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허가기간이 최소 3개월이라는 점.

사실 이게 컸다. 한국은 허가가 한 달이면 나는데 소장님은 3주에서 2주로 항상 앞당겨서 받길원했다.

그러다 보면 실수가 잦고, 건축주는 보채고, 소장님은 나를 보채고, 나는 공무원을 보채야 하고

그럼 공무원이 화가 나서 더 느리게 하거나 나에게 맨날 화를 낸다.

악순환의 고리였다.

그래 최소 3개월 6개월이고 길면 1년인데 그럼 최소한 나를 맨날 쪼으진 않겠지 싶었다.

그래서 사실 독일에 오게 되었다.

별거 바란 건 없었고 환상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노잼의 나라, 세금 40프로, 의료도 별로, 인종차별, 언어 개 어려움, 등등 맨날 부정적인 거 찾아봤다.

그래도 뭐 이 1년 실패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100세 인생에서 얼마나 그렇게 차지한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왔다.

 

 

  1. 익명 2020.02.07 15:56

    비밀댓글입니다

  2. 익명 2020.02.09 17:08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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