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유. 스포유!!

영화 감상에 앞서서 일단,
내가 이 영화를 다보고 바로 그 즉시 든 생각.
1. 이게뭐야
2. 도대체 뭐지
3. 프랑스 감독이 상받은 영화는 이제 다시 안볼것이다.

사실 예전에 영화가 개봉할때 차랑 사랑을 나누고 임신하게 되는 영화라고만 알고있었는데,
자주 듣는 매불쇼 영화코너에서 세 평론가가 추천하기에 얼마나 재밌을까 하며 보았다.

이 영화는 처음에 알렉시아가 사고를 당해서 머리에 티탄을 이식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친아버지가 알렉시아에게 했던 무심하고 관심없는 행동들, 그리고 그 행동은 알렉시아가 성인이 될때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알렉시아는 차앞에서 춤을 추는 일을 하며 남성들에게 추파를 받고,
하지만 알렉시아는 남성, 혹은 여성에게도 사랑을 느끼지 못하며 차에게 사랑을 느끼고 차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차 앞에서 알렉시아의 춤으로 구애를 하고 마지막엔 사랑을 나눈다.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설명을 들을 당시, 아니 차랑 어떻게?? 사랑을 나눠??? 했는데, 나누더라……
그리고 그 이후에 알렉시아는 원인모를 반사회적 행동, 그러니까 살인을 하다가 경찰에게 수배를 받게되고
그 와중에 차와의 사랑으로 임신을 하게된다.

경찰에 쫒기다가 꾀를 써서 실종아동으로 남장을 하고 그 실종 아동의 아버지였던 뱅상 랭동과 같이 살게된다.
자신의 배와 가슴을 압박붕대로 감아가면서 눈썹도 다 깎고 본인의 코뼈를 부러뜨려가며 남장을 한다.
뱅상 랭동은 소방관으로 일하며 본인이 늙어가며 잃어보리고 있는 남성성에 집착하여 스테로이드제를 중독적으로 맞는 사람이다.
뱅상 랭동은 나중에 알렉시아가 본인의 아들이 아닌 것을 알게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둘은 가족애를 느끼게 되고, 종국엔 알렉시아가 차의 아기를 출산하게 되며 알렉시아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보고 나서 몇가지 글이나 기사를 읽고 정리해본 결과,
이 영화는 크게 두가지 흐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재 구성된 가족 그리고 두번째는 신체 변형을 통한 탈젠더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국과 비슷하게도 프랑스도 남보다 못한 가족이 많은 것 같다.
여기서 나오는 알렉시아의 가족과 뱅상 랭동의 아내 또한 남보다 못한 가족이다.
알렉시아의 아버지는 알렉시아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그의 어머니는 알렉시아를 그냥 표면적으로 좋게만 지내며 그녀에게 노골적으로 관심없고 신경질적인 아버지보다 그다지 비중이 없게 나온다.(그리고 알렉시아는 불로 본인의 부모를 죽임.)
뱅상 랭동의 아내는 알렉시아가 그들의 실종된 아들도 아니고 심지어 임신 사실도 알게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은채 단지 뱅상 랭동을 끝까지 책임지란 말만 하고 떠난다.

그리고 그 둘이 부자, 혹은 부녀의 관계로 엮이게 되면서 그 둘의 친가족보다 더한 가족애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종국에는 알렉시아가 출산의 진통이 시작됬을때 뱅상 랭동도 자기의 배에 불을 붙이는 행동을 하며 뭔가 연결된 씬을 보여주는데,
나는 이를 통해 감독은 우리에게 이 둘이 가족으로 연결되었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제 탈젠더.
남성성에 집착하는 뱅상 랭동과 처음엔 여성성으로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남장을 위해 여성성을 버리지만 그렇게 남자도 아닌 거같고 그런 애매한 모습의 알렉시아,
그리고 임신의 과정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움과 여성성은 정말 하나도 없다.
배가 불러올 수록 기괴해지는 그녀의 신체, 그리고 종국에 출산을 임박했을 때의 그녀의 모습은 거미같기도 하고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상했다.
나는 아무래도 같은 여자라 그런지 뭔가 더 와닿았던것도 같고 하지만 남친은 남자인데도 이상하다고 이야기 한걸 보면.. 그냥 이상했던것 같다.
사실 이상하다는 것보다 한층 더 심오하게 이상한.. 괴랄하다고 하면 딱 들어맞을 것 같다.
임산부를 아름답게 그리는것도 괴기하지만, 저렇게 괴랄하게 그리는것도 뭔가 불편하다.
또한 마지막에 알렉시아가 중성적인 모습으로 소방관 복장을 하고 소방차에서 처음 장면과 같은 똑같은 섹시춤을 추는데 그녀를 더이상 성적인 눈빛으로 보지 않고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남성들이 대조를 이루었다. 이것을 통해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비판하고 싶었던것 같은데, 난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소방차에 대한 구애의 춤 아니였을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앞의 임신할때처럼과 비슷하게 춤을 춘 이후 소방차와 사랑을 나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관념, 즉 차를 남성성의 대표적인것으로 상징하는데 이 감독도 거기에선 아직 벗어나지 못한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차와 알렉시아가 흔히 보는 남성과 여성들처럼의 사랑을 나누었을리가 없다.

남성성에 집착을 한다고(뱅상 랭동처럼) 남성이 되는것인가, 아님 알렉시아처럼 여성도 남성도 아닌 모습을 한다고 탈젠더가 되버리는 것인가.
그것에 대한 내 대답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남성이 남성성을 가지게 되면서 얻게되는 불평등한 이익이나 권력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여성이 여성성을 얻으면서 얻게되는 성적인 대상화를 비롯한 고정적인 이미지에 대해 비판적인 것이지, 성, 젠더 그 자체를 탈피한다는 생각은 아직은 모르겠다. 아니 탈젠더가 과연 가능한 것인가.

오히려 남성이 남성성을 추구한다던가 집착 혹은 그 반대의 행동, 또는 여성이 여성성을 추구, 집착 혹은 탈피한다는것
모두 그 개인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뱅상 랭동이 늙어가며 잃어가는 자신의 남성성에 스테로이드로 집착을 하는 모습 또한 얼마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인가.
그에 비해서 차와 사랑을 나누고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은 알렉시아의 모습은 나에게 뱅상랭동만큼 와닿지 않았다.

“괴물을 받아준 칸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한다.”라고 말을 전한 줄리아 뒤크루나 감독.
나의 확대해석으론 괴물을 낳은 알렉시아와 이 감독의 말이 겹쳐 보이지만, 글쎄 이게 괴물일까.
혹은 그냥 흔한 현대사회의 가족 해채와 넓은의미의 가족의 재정의를 이상하고 괴기한 표현과 탈젠더라는 있어보이는 포장으로 감싸서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은건 아닌지.
여성성을 한껏 강조한 그 감독의 사진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몰라 난 어쩄든 얇팍한 내 머리론 이해가 고작 이정도이다. 매불쑈에서 세 평론가가 하는 이야기를 기대해봐야겠다.
결론은
상받은 프랑스 감독 영화 이제 절대안봐!!!!!!!!!!!!!!!!!!!!!!!!!!!!!!!!!!!!!!!!!!!!!!!!!

하지만 육칠개월만에 블로그 글을 쓰게끔 해준 거엔 감사한다.
아 근데 부분부분 나오는 음악은 진짜 너무 좋았음!!


2주가 넘는 긴 휴가를 맞이했지만 코로나때문에 집에만 머물수밖에 없기에 마르쎌과 나는 영화를 한편 보았다.

사실 한편이 아니라 넷플릭스 여러 시리즈도 보고 시간을 때웠지만

이 영화를 보고 바로 내 생활환경의 변화를 줄 수 밖에 없었기에 여기에 이렇게 써본다.

독일어론 Vergiftete Wahrheit, 한국어는 다크워터스, 영어론 Dark Waters

 

독일어로 영화를 볼수밖에 없어서 디테일적으로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는 사실 의문이지만 큰 흐름은 이해했기에 써본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된 영화이고 아직도 현재진형중이다.

처음엔 한 마을에서 소들이 죽기 시작하면서 이 소들의 소유주인 농장주가 이웃이였던 할머니의 손자가 변호사인걸 알고 소들의 죽은 후 해부해보니 이상했던 심장과 치아 간등을 증거로 가지고와서 변호사인 롭(마크러팔로)에게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다.

알고보니 미국 거대 화학기업 듀폰에서 PFOD C-8이라는 과불화옥탄산이라는 물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리고 여성들은 기형아를 출산하였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인근 강으로 조금 유출된 이 물질이 농가의 소를 죽이고 심지어 이 물을 마시는 마을사람들도 암이 걸려서 죽는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아 지역과 노동자와 기업 사이의 소송이라고 볼 수도있겠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이 물질이 대표적으로 우리가 많이 쓰는 후라이팬 코팅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이 후라이팬 코팅뿐만 아니라 애들의 장난감, 비옷, 텐트 등 수많은 코팅 제품에 사용된다.

더 심각한건 이 테플론 코팅 (테팔 후라이팬 등 각종 좋고 비싼 상표에도 이 코팅이 쓰임)을 전세계에서 금지시킨게 바로 작년 2020년이란 사실이다. 우리나라엔 다이아몬드 코팅이라는 둥 이름을 바꿔서도 팔리고있다.

 

이 영화가 끝난뒤에 건강과 환경에 민감한 마르쎌은 각종 다큐를 찾아보았고 (나는 조금) 이 머리 좋은 회사에서 PFOD C-8이 아니라 조금 화학식을 바꿔서 새롭게 코팅을 한다는 것도 알았다.

옷 등 이미 깊숙하게 들어온 모든 물건들은 버리지 못하더라도 이 코팅후라이팬은 다 버리기로했다.

기본적으론 400도 인가 600도 이상에서 이 화학물질이 발암물질로 바껴서 인체에 흡입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다른 다큐멘터리에선 160도 후라이팬에도 이 물질이 나온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물질은 대단히 안정적이라 인체에들어가서 쌓이고 이게 암이 된다고한다.

 

그리고 한국사람에겐 체내 과불화옥탄산 농도가 다른 나라사람보다 더 높은데 그 이유가 배달음식 떄문이라고 한다.

각종 코팅제품에 이 물질이 들어가니 당연히 배달용기에도 들어가니까...

 

그래서 나는 코팅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스테인리스 웍과 스테인리스 후라이팬 그리고 주물팬을 주문했다.

케라믹 코팅으로 된것도 괜찮다고 하는데 뭐랄까 이 영화를 보고난뒤에는 어쨌든 코팅은 조금 꺼리게 되었다.

편리하려고 만든 인공적인 화학물질이 도리어 인간에게 해롭다는 것.

그래서 조금 더 불편하게 살아가기로 했다.

플라스틱 용기도 줄이고 반 영구적인 후라이팬 사용으로 생활 쓰레기도 줄여보면서 좀더 건강하게 올해 2021년을 보내야겠다. 

 

 




독일어 공부를 좀더 효과적으로 잘하고 싶어서 독일 영화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반복해서 볼 영화를 찾아다녔는데, 그중 눈에 띈게 바로 이 디 벨레이다.



이 영화를 보고 놀란점이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런 영화를 독일에서 만들었다는 점과

이 영화속 장면 장면들이 너무나 낯익다는 것이다.


라이너 선생님은 처음에 독재는 또다시 독일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에 대한 의문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있을 수 없는일이라고 하지만 라이너 선생님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시험해본다.


그런데 라이너 선생님이 이 독재를 하기위해 실행하는 방식들,

예를 들면, 선생님이 오시면 반장이 일어나서 인사하게 하고 모두 자리에 앉고,

손들면 선생님이 지목을 해야 발표를 하고, 유니폼을 입고다니고, 자신만의 문양을 만들고, 집단의 이름을 짓고



이 모든 행동들은 한국에서 초등학교때부터 벌어지고 있는 행태들이였다.


처음에 아이들은 흰색 셔츠와 청바지를 입으면서 빈부의 격차, 인종을 떠나 모두가 평등해진다고 좋아한다.

어렸을 적 교복의 장단점을 토론하면서 행해졌던 교복의 장점 아닌가!!

심지어 본인들의 공동체에 디벨레라는 이름을 짓고, 그들만의 행동을 하고 기호도 만든다.


공동체를 강요하고, 조금이라도 의문을 가지거나 튀려는 학생들을 철저하고 은밀하게 배척한다.


정말 우리사회의 면과 똑같이 닮아있었다.



비단 학교뿐만이 아니다.


대기업에서 워크샵때마다 회사 티를 나눠주고 입고 춤추고 단합행동하고, 튀거나 의문을 제기하면 철저하게 배척당하는 모습들,


이것들이 모두 전체주의적인 우리 사회의 단면들이였다.

나는 이런 파시즘적인 것들은 모두 군대같은데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알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겹쳐지는 한국의 모습들과 그것들을 열광하며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혼란이 왔다.

양아치 학생들은 자기들이 시덥지 않은 양아치였는데 이 디벨레를 만나면서 본인들의 행동에 정당성이 부여된다고 좋아하고 소심하고 사회성이 결여되었던 학생은 계속되는 선생의 칭찬에 행동대장이 된다.



영호를 보면서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대법원장의 판결 거래 사건들이 떠올려졌다.


이런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 판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사회와 공동체에서 우월하고 똑똑해야할까,

이런 초등학교때부터 선생님 말 잘듣고 공동체의 이익을 실현하기위해서 앞장선다면 이런 비리 대법원장도 가능한 일이 아닐까.


다수의 이익을 위해 혹은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양심과 객관화된 가치관은 사라지고 본인의 정당성과 신념만이 남아 칼을 휘두른다면.

양승조라는 대법원장 및 여러 비리판사 검사들 혹은 비리형 정치인들은 그들이 잘못되었다기보단 우리사회가 키워낸 괴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요즘 찬성의견만 내면 무슨 간첩처럼 몰리는 예맨 난민사건이 떠올려진다.

우리라는 공동체가 너무 강해서 다른 종교, 다른 인종에게 느끼는 포비아. 

그 또한 우리안의 파시즘이 키워낸 공포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라이너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 본인의 수업을 자랑스럽게 부모에게 이야기하고 부모는 의아해한다. 

특히 수업 방식을 싫어하는 학생들을 라이너선생이 쫒아냈는데 부모는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생은 본인의 말썽쟁이인 동생에겐 그런 행동이 필요하다고 부모에게 말하지만 부모는 고개를 젓으며 말한다.

"그건 옳은 방법이 아니야. 얘는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야해"

배척보단 포용, 다름을 인정하고 조절하려는 생각. 그리고 그것들을 잘 굴러가게 하기위한 촘촘한 법규.


요즘 많이 대두되는 여성혐오, 남성혐오, 난민혐오, 이슬람혐오.

혐오란 이름앞에는 우리의 생각, 피부, 성별등 본인이 속해있는 공동체와 다른 집단이 붙는다.



영화를 보면서 기분은 씁쓸해졌지만 현실을 직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 벨레는 독일인보다 한국인들이 많이 봐야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의 결말은 아주 비극적으로 난다.



우리사회도 비극적으로 끝이나기 전에 우리안의 파시즘을 깨버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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