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stil 800T, Rollei 35 in Berlin


2010년 대학교때 갑자기 한 선배가 불러내서 한 두명의 선배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적이 있다.
그 선배들은 나에게 “빡~ 연평도에 북한이 미사일쐈어. 어떡하냐 이제” 하고 걱정을 하였다.
그때 당시만해도 정치에 관심도 없고 오로지 내 전공 과제만 중요한 나는 그 사실도 처음 들었고 헐!! 어째요 이제!! 전쟁나는거에요?
하고 생각없이 참 순진하게도 되물었고 선배들은 웃으며 모르지~ 에휴 전쟁나면 끌려가겠네 허허 하며 커피마신 기억이 있다.

정전국가인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때는 간첩신고는 113이라는 신고전화도 보고 테레비전 광고도 보았다.
일제시대부터 육이오까지 다 겪으신 우리 할머니는 언젠가 한번 카드만 쓰는 나에게
항상 방에 현금을 구비해두라며 전쟁나면 카드 전화기는 다 무용지물이니 얼마정도 현금을 구비해 놓으라는 이상한 조언도 받았다.
전쟁이란 단어와 참 가깝게 무의식적으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이 참 좋게 전쟁을 몰랐다.

요즘은 전쟁일어나면 무조건 핵전쟁이라 잘 일으키지도 못해 하는 친구들의 말과,
세계 정세변화에 무지했던 나는 아랍국가에서 얼마나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지는지 조차 모른채 그대로 자라왔고 그 실상은 글쎄,
아마 가버나움이란 영화를 시작으로 서서히 그리고 정치에 대해 알면 알수록 세계 각국에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자각을 하고 있었던것 같다.
독일 오기 전부터 난민문제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냥 두리뭉술하게 관심만 가진정도지 깊진 않았고 독일로 와서 생활하면서,
룸메와 룸메의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알게되었던 것 같다.

짜증나게도 삶은 얼마나 불공평한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열하게도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고마움과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에 대해 감사하게되었다.
그리고 이제 눈앞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되었다.
세상은 참 비정하게도 능력이 있건 없건 운이 좋아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에 대한 경외심을 멈추지 않으며,
땅을 뻇고 싶으면 그냥 높은 사람, 야욕이 있는 사람이 죽이고 싸우면 되는걸 구지 많은 병력과 무고한 사람들의 삶을 빼앗아 가며 그 지도상의 선을 넓히려 한다.

비슷한 몸무게와 똑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진 몸, 눈 두개, 코 하나 입하나,
하지만 죽음의 무게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왜 푸틴이나 시진핑 히틀러같은 사람의 죽음의 무게가 내 죽음의 무게보다 값지고 소중하고 무거워야하는가.
나는 정말 이해할수 없다.

정치 아마추어라며 질타를 받고있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하지만 나는 그를 질타하고 싶지않다.
정치경력 많은 정치인 재벌들이 이미 다 내뺴고 없는 우크라이나에 그는 혼자 시민들과 싸우고 있다.
우리나라엔 누군가는 존경해 마지않는 육이오때 다리도 폭파시키고 똥빠지게 도망친 자랑스러운 독재자 이승만씨가 있기 떄문에.


투표 잘해야지 진짜.
근데 지금 대통령 후보인 정치 경력 8개월인가 3개월인가 무튼 그사람은 우리나라의 독재자를 그렇게 빼다 닮았던데.
정치 경력이 적건많건 그건 중요한게 아닌거같다.

  1. 도이치아재 2022.03.01 18:17 신고

    전쟁이 하루라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요... 안타깝습니다.

독일 오기 전에 러시아 여행을 하면서 정말 기억에 남을만한 조롱을 당했던 적이 있었다.

러시아 초딩남새끼들이 내 뒤에 바짝붙어서 웃으면서 깔깔거리고 내 머리위로 손가락질을 해가면서 조롱을 했었다.

(나보다 키도 작은새끼들이)

그 때 나는 걔네들을 향해서 FUCK YOU!!!!!!!!!!!! 라고 소리질러줬는데 그것마져도 따라하며 조롱으로 돌아와서 정말 매우 분했던 적이 있었다.

(씨발로 욕해줬어야하는건데....)

 

얼마 되지 않은 기억이고 진짜 그렇게까지 자존심상하고 분한적이 없었어서 아직도 내 뇌리에 박혀있는 기억이다.

 

독일와서도 처음엔 그놈의 기억때문에 애들무리가 있다 그러면 일단 움츠러들고 피하게 되었었다.

페이스북에서도 온갖 인종차별글이 넘쳐났고,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할까를 생각도 했다.

(내 특기 :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미리 앞서서 걱정하고 혼자서 시뮬레이션해보기. 세상피곤.) 

 

그러던 중에 집근처에 작은 술집을 가게되었는데, 거기서 술을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술집은 작았고 주인들과 손님들은 동양인 여자둘에 대해서 호기심과 우호적인 제스쳐를 표했다.

그러던 중 주인이 "니하오"를 외치면서 우리에게 인사를 하길래 우린 한국인이라고 말해주었다.

(기분도 나쁘지않았다. 우호적인 의미해서 한것이였기 때문에)

그랬더니 주인이

"한국인들은 니하오라고 하면 기분나빠하더라. 나는 잘 몰라서 그런건데... 나는 중국을 좋아해. "

하면서 우리에게 본인이 중국 여행간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사람은 한국여행은 가본적이 없고 중국여행만 갔다온 사람이였다.

우린 "한국인들은 중국에게 좋은 감정이 있지 않아서 그런거같아."

라고 대강 얼버무렸다.

 

뭐 적어도 나는 니하오를 들을땐 속으로 '뭐야, 내가 중국인들처럼 보여?' 하는 생각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인들처럼의 이미지는 시끄럽고, 무례한? 하하..

이렇게 쓰고보니 나 또한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란걸 또 깨닫고 있다.

(안 그런 중국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서... 내 중국인 친구들도 전혀 시끄럽지 않고 무례하지도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목에도 썼지만 나는 이제 니하오라고 불림당해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게 되었다.

나의 무지를 내가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야 이해를 하게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남자친구랑 쾰른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만난 남친의 학교 친구 두명이 백인이였다.

한명은 얼굴 쫌 긴 애랑 한명은 안경쓴애.

걔네랑 남친이 5분정도 이야기하고 나랑도 악수해서 그 애들의 얼굴을 찬찬히 익힐수 있는 시간이였다.

 

그리고 나서 얼마뒤 남친이 자기 졸업사진 찍었다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는데 거기에도 비슷하게 생긴 두명이 있길래

내가 "얘네 그때 쾰른에서 만난애들이구나!!"

했는데 아니였다. 아, 여기서 나는 느꼈다. 내가 얘네를 똑같이 생겼다고 보는거처럼 얘네도 우리를 똑같이 보겠지.

그리고 학원에서도 사실 인종이 어디인종인지는 모르겠다.(이것도 사실 무지다)

백인도 아니고 황인도 아니고 내가 생각할땐 남미쪽 아이들인거같은데 안경쓰고 머리긴 여자아이 둘이 있었는데,

처음엔 둘이 너무 똑같아보여서 구분이 안되었다. (사실 지금도...)

 

내가 인종구분도 안돼고 독일에 와서 살면서 원주민 얼굴도 잘 기억못하는데, 여기서 사는 수많은 백인들 및 다른인종들은 내 얼굴이 중국인얼굴인지, 일본인얼굴인지, 알 수 있을까?

얘네는 그냥 나한테 인사를 하고싶었는데, 지네가 아는 나라가 그냥 단순히 중국일뿐이야. 그리고 지네가 아는 동양인 인사는 '니하오'밖에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사는데 내가 터키어로 '안녕'을 알고있고, 상대방이 누가봐도 터키인이야!(내시각에) 그럼 나도 터키어로 안녕이라고 할꺼같다. 

 

그리고 결정적인 계기는,

아나라고 학원에서 만난 이란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일주일에 두번 카페에서 독일어 말하기 연습을 하는데,

어느날 자기 언어로 상대방 이름을 써주는 그런 날이있었다.

아나가 쓴 글자는 정확하겐 페르시아 어였고, 처음에 만났을때 아나가 이런 정보를 나에게 알려준거 같다.

하지만 나는 아나가 쓴 글자를 보고 예쁘다고 생각했었고, 이 생각을 전달하고싶었다.

 

그래서 꺼낸 첫마디가,

"이거 아랍어야? 예쁘다"  했더니,

"아니야.(단호) 이건 아랍어가 아니고 페르시아어야.(단호)"

 

단호한 아나의 표정과 말투에서 나는 순간 반성을 했다.

아, 누가 누굴 보고 뭐라고해. 내가 나부터 무지속에 살고있는데.

 

그리고 누굴 탓할수 있을까, 한국을 모른다는 거에 대해서,

사실 그냥 그들은 인사하고싶었을 수도 있는데, 그냥 걔네는 말걸고싶었고 하필 아는 동양어가 니하오일뿐

이거에 대해 내가 일일이 기분나빠하는것도 웃기고, 

그들은 나에게 아무런 생각이 없고 그 순간적인 호의? 호기심? 이였는데 내가 이걸 온갖 가시돋힌 생각으로 밀어내는게 나한테 좋은걸까 싶기도했다.

나처럼. 내가 그동안 했던 모든 무지함도 그저 순간적인 호기심과 아는척하고 싶었던 마음, 생각없음에서 나오는 행동들인건데 그래서 나와 같다고생각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턴 니하오도 기분나쁘지도 않고 사실 그전에도 기분이 엄청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걸 인종차별적 행동으로 분류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사람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고싶은 마음도 없고 할 생각도 없지만,

내 생각의 변화이기에 내 블로그에 기록삼아 남겨본다.

 

아나가 써준 페르시아어. 페르시아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싱기!!

 

PS.- 아 물론 조롱하면서 니하오를 외치고 계속 따라오면서 말하는건 예외다. 그런 뉘앙스는 들으면 바로 안다.

디알./일상

[일기] 다짐

2018. 5. 1. 22:47

독일 문화원을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나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음악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다.


따지고 보면 초중고 다 일반 인문계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교마저 공대를 나왔으니, 내 주변엔 온통 공대 아니면 건축과 아니면 문과 친구들 뿐이다.



그나마 그림그리는 예체능 친구들이 몇명 있지만 그림은 뭐....

나는 음악하는 사람들을 솔직히 독일어를 배우면서 처음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 물론 고등학교때도 선화예고에서 피아노 치던 친구가 전학을 왔지만 별로 안친했으므로...


하지만 독일 문화원에 가면 일단 1/3 이상은 음악하는 친구들이다.


그래서 2월달엔 그 친구들이 바순을 연주해주는것도 들었다.



그러던 중에 어제는 성악하는 분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성악하는 사람들도 태어나서 딱 한번 김동규씨 연주회를 가고 나서는 보지 못했다..


티비로만 보았다.


무튼.




말을 걸어볼 기회가 있어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그들은 정말 프로페셔널했다.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목과 목소리를 위해 적절한 휴식을 취하려고 노렸했고,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피지 않는다고했다.


운동도 헬스같은 근육운동은 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해서 어쨌든.


그들만의 방법으로 철저하게 목을 관리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조금 멍해지면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스를 열심히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자기관리의 영역을 넘어서는 본인의 직업, 전공을 위한 자기관리라고 해야할까?


정말 프로라는 생각?



그러면서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있는지, 나는 내 전공을 위해 어떤것에 투자를 하고있었는지.


뭐, 잡지 구독해서 보고, 가끔 소장님이 건축물 외장 재료업체 사람 불러주면 열심히 듣고, 그러는거 밖에 없는거같다.


사실 수동적으로 하는 투자 밖에는 없었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자극이 되었다.


나도 내 전공을 위해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내 전공을 위한 내 자기관리는 무엇일까?


나는 프로가 되려고 하는가? 등등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스케치 한장씩 그리고, 책도 많이 읽으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건축이란, 깊이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깊이는 결국 책에서부터 나오지 않을까 하며 사두고 장식만 해두었던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하루 삼십분씩. 


그리고 뭐든지 꾸준히 하려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블로그도 해야하는데...... 


제일 후순위이니....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