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019년 4월에 독일에 와서 2020년 2월부터 지금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였다. 어학도 한 6개월 한 나를 왜 뽑아 줬는지 조금 궁금했지만, 처음에는 고마워하면서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솔직히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나 혼자 그리고 소장이랑 이렇게 둘이서 한다. 두 명이 할 건 못되지만 어쨌든 1인분의 역할을 이 회사에서 하고 있구나 하고 잘 다녔다. 하지만 너무 적은 휴가 일수와 급여를 굉장히 적게 올려줌 등으로 이직 결심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급여가 너무 적게 올라서 동기부여가 사라졌다. 올해 10월 즈음 나는.소장에게 정식으로 내 급여를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소장은 나를 20년차 경력의 직원과 비교하면서 너는 이렇게 일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니 나도 여기서 20년차 있었으면 할 수 ..
한국에선 항상 컴퓨터가 있었다. 노트북이 아닌 컴퓨터가. 학교 작업실에 컴퓨터를 놓고 작업하는데 편했고, 졸업 설계 때는 학교 내 자리에 컴퓨터를 옮겨놓고 작업을 했다. 처음엔 조립을 하지 않고 아빠가 사줬던거 같은데 그 사준 컴퓨터가 메인보드에 뻑이 가서 어쩔 수 없이 교체해야만 했다. 처음엔 뻑이 어디서 간지 몰라서 하나씩 바꾸기 시작했다. 그래픽카드, 씨피유 그러다가 메인보드에서 뻑이 간걸 알고 다 교체를 진행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내손으로 직접 공부하며 부품 사서 조립한 컴퓨터를 일 년 만에 아빠한테 다시 팔았다. 독일로 오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간편한 노트북으로 바꿔서 오려고 아빠에게 팔고 그 돈으로 노트북을 사고 한 한 달 전까지 자주 사용했던 것 같다. 단점이라면 남편이 게임하는데 나도 너..
컴퓨터 게임 좀 해봤다면, 사양 좋은 컴퓨터에 관심이 있다면 당연히 기계식 키보드에도 한 번쯤 관심을 가졌을만할 것이다. 하지만 키보드 치고 너무 비싸서 그동안 사지 못하고 있었고 독일로 넘어오면서 컴퓨터에 대한 꿈은 멀어져 갔기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컴퓨터를 맞추게 되는데, 마르쎌이 맨날 지 컴으로 그래픽 좋은 게임만 돌리고, 그 게임은 불행히도 내 노트북에선 돌아가지 않아서 그래픽카드 가격이 떨어지길 기다리다가 이번에 4000대 글픽카드가 나오면서 기존에 있던 글픽카드들이 가격이 다 내려가서 간신히 3070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립컴퓨터를 다시 구매하게 되고 모든 부품은 다 사고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는 동안 항상 생각만 해오던 기계식 키보드를 구..
그날은 내가 대학원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날이었다. 갑자기 같이 근무하던 친구가 "언니 이것 좀 봐요" 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들이밀었고 거기엔 배가 침몰하고 있었다. 그 후로 계속 우린 근무고 자시고 계속 새로고침과 동영상 뉴스를 보며 세월호 침몰을 바라만 봐야 했다. 처음엔 "모두 구조했다"라고 떴고 다시 그건 오보였고 그리고 날아오는 소식은 참담하고 암담할 수밖에 없었다. 울었고 사과했고 다짐했다. 그런 어이없는 죽음을 다신 듣지 않겠다고 그리고 8년이 흘러 나는 또다시 다시 목격하게 되었다. 이태원 핼러윈 파티. 3년 전에 나도 거기 있었다. 내 예전 회사는 심지어 이태원에 있어서 매년 거기를 지나쳤고 한 번은 작정하고 놀러 간 적도 있었다. 그 당시엔 해밀턴 앞 도로를 통제하고 그곳으로 사람이 다..
모두들 각자의 좋은 세상을 어릴 적부터 꿈꾼다. 나는 망상 혹은 공상을 좋아해서 어른이 되었을 때의 나를 종종 생각하곤 하였다. 내가 어른이 되면 이런집에 살까, 저런 집에 살까, 직업은 무엇일까 결혼은 했을까 등등. 그리고 사회라는 것이 내 머릿속에 정확하게 인식되기 전엔 나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곤 했다. 그러다가 어찌저찌 대학교를 나오고 사회에 나오게 되었을 땐, 내가 생각하는 사회가 아니어서 절망하기도 하고 그 속에서 대안을 찾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한국 오기 전의 내 머릿속의 독일을 꿈꿨었다.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지금의 독일보단 내가 꿈꿨던 독일이 조금 더 유토피아적이라고 할 수 있었을 거 같다. 멋진 신세계. 제목만 봤을 땐 어렸을 땐 청소년이 읽어야 할 고전 도서 목록을..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다. 내가 결혼을 하다니. 결혼을 하였다. 마르쎌과 어언 1년쯤 만났을 때 나는 한국을 아직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독일에서 살려면 울타리나 뭐 좀 결속력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르쎌한테 먼저 제안했다. " 혹시 너 결혼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니? 난 우리가 2년쯤 사귀고 나면 결혼하고 싶은데 결혼 생각이 없으면 말해줘, 다른 이를 찾아봐야 하니까 ^^" 마르쎌은 급 당황을 하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하. 까였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마르쎌이 오케이 했다. 내가 먼저 프러포즈를 한 것이었다. 작년에 올해쯤 한국에서 전통혼례를 하자는 계획을 짜고 가족과 상의를 했다. 그리고 올해 5월에 결혼식 전에 한국에 들어가서 가족들에게 마르쎌을 소개해주..
우리나라엔 또라이 질량 법칙이라는 단어가 있다. 한 직장에 무조건 또라이 한 명은 있다는 뜻이고 또라이가 없다면 본인이 또라이인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이건 전세계 공용인 것 같다. 우리 사무소는 좀 심각한데 그것은 바로 마리온 때문이다. 그녀는 정말 미쳤다. 생김새에 대해선 구지 쓰지 않겠다. 독일에 와서 느낀건 이 사람들은 남이 무엇을 하건 개인주의가 심해서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마리온은 예외다. 예외. 그녀는 내가 생각하기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 편집증이 있고 노이로제가 있으며 열등감도 있는 것 같다. 나는 회사엔 일만 하자는 주의여서 누구와 항상 다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 이 독일 놈들에겐 없는 일종의 동양 문화적 특유의 배려심까지 있으니 내가 얼마나 회사에서 친절했을까. ..
2주 전에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에 다녀왔다. 도큐멘타는 독일에서 나치 시절 때 예술이 탄압을 받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에게 현대미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행사로 열리기 시작했다. 5년마다 100일간 열린다고 한다. 사실 암것도 모른 채 오 5년마다 열리는 예술 축제라고 해서 다녀왔는데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찾아보고 가면 좋을 듯하다. 이번 전시에는 인도네시아 예술가인 타링 파디가 작업했던 민중의 정의라는 거대한 그림이 반 유대주의적이라는 것에 휩싸여 철거되기도 했다. 누구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철거되었기에 나는 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무튼 이번 도큐멘타의 주제는 인도네시아의 전통적인 공용 쌀 저장창고 '룸붕'이다. 공동체의 관한 주제인 것 같다. 전 세계의 예술이 모여들다 보..
어린시절 까마득히 내 기억의 처음을 더듬거릴때부터 나와 알러지는 항상 친구였던거같다. 종합병원에서 내 등에 볼펜으로 낙서를 하고 물방울을 떨어트리고 그 주위가 몹시 가려웠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알러지 테스트였겠지. 추석 설날에 할아버지 댁을 가면 아침부터 눈을 비비기 일수였고 재채기 콧물 모든 것이 나와 함께였다. 항상 코가 막혀서 입을 열고 잤는데, 다행이게도 입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입을 열고자면 그 입의 골격이 변형되어 튀어나오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거같다. 겉모습이 문제는 아닌게 코골이, 깊이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등등 많은 부작용이 있다. 알러지 결막염, 비염, 천식까지 있었는데 결막염은 고등학교때, 천식은 어릴때 사라졌고 이제 비염만이 남았다. 사실 천식은 코로나 이후 다시 얻게되었다 룰..